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26 퍼싱 (문단 편집) ===== 데사우 조우전: 슈퍼 퍼싱의 실전? ===== 이 중 눈여겨볼 만한 증언으로, 45년 4월경에 T26E4 슈퍼 퍼싱이 [[티거 2]]를 격파했다는 증언이 있다. 티거 2는 독일에서 거의 고갈되어 있었고, 위에서 보듯 슈퍼 퍼싱도 전 유럽을 통틀어 2대, 그 중 실전투입과 야전개수가 된 문제의 슈퍼퍼싱은 해당 차량 하나밖에 없었다. 만날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지만 1945년 데사우(Dessau)에서 그토록 바라던 티거 2와 교전을 치렀다는 이야기가 있다.미 육군 3기갑사단 역사재단 홈페이지의 역사기록 부문에서 소개된 이 전투는 다음과 같다.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역사재단 홈페이지 작성글 번역본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M26 퍼싱/f0075523_4ab2623c64dc3.jpg|width=100%]]}}} || || 티거 II 와의 결투 || > >위 3명의 단체사진 중 중간의 인물, 그리고 독사진 속에서 나온 이는 1945년 경 촬영된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소속 슈퍼 퍼싱 전차장이던 메사추세츠 주 출신 '''조셉 마두리(Joseph Maduri) '''육군 하사이다. 단체사진 맨 오른쪽의 인물은 팬실베니아 주 출신 '''존 P. 어윈(John P. Irwin)''' 육군 상병이다. 단체사진 맨 왼쪽의 인물은 “'''피트'''(Pete,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성)”로 추정이 되는 바이다. 이 외의 2명(조종수와 기관총수)의 승무원들은 사진 속에 나타나 있지 않다. (마두리 가문 제공) > >'''1945년 4월 21일에 있던 데사우에서의 결투''' >'''선두에서 일대일로 맞서 싸운 전차전 승리''' >'''작성자: 미 육군 제3기갑사단 공식 역사재단사이트(3AD.com) 관계자 빅 데이먼(Vic Damon)''' > >1945년 4월 21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 제3기갑사단의 공식적인 마지막 전투작전을 불과 사흘 앞둔 날이었다. 해당 부대 예하 33기갑연대의 슈퍼 퍼싱이 2차세계대전에서 가장 강력한 중무장 스펙을 지닌 독일산 전차 티거2 또는 타이거 로열(Tiger Royal)등으로 알려진 77톤급의 전설적인 킹타이거를 조우하여 격파했다. 그 사실은 오늘날까지 군사 역사학자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으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53톤급 M26 퍼싱을 개조한 슈퍼 퍼싱(Super Pershing)이 킹타이거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전한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다. > >미 육군 제3기갑사단은 서부유럽 전선에서 유일하게 기존형(M26)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주포를 탑재하고 단 두대만 개조되어 탄생된 슈퍼 퍼싱을 운용하는 부대였다. 대전 말기(1945년 3월)에 미 본토에서부터 늦게나마 도착한 이 전차는 독일 내에서 야전 시험과 개조가 이루어졌고, 파데르본 전투 이후 약 열흘 간의 실제 전투가 있었으며, 며칠 후 시작되어 엘베 강 근처의 데사우 전투로 공식 전투는 종료되었다. > >미국 기갑병기 설계안 코드번호 T26E4-1의 일명 슈퍼 퍼싱은 T15E1 90mm의 긴 신형 주포를 장착해, 킹타이거의 독일산 [[PaK 43|고속 88mm 71구경장 43식 전차포]]의 성능을 능가하도록 설계됐다. 미국의 이 신형 주포는 시험에서 1,000야드 거리에서 30도 경사의 8.5인치의 장갑판을 성공적으로 관통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은 100야드 거리에서 13인치의 장갑판을 관통했다는 것이다. 90mm의 특수 탄약은 초속 3,850피트, 즉 킹 타이거의 88mm보다 600피트 더 빠른 속도로 발사되었다. 또한 90mm의 신형 탄약은 이전 버전에 비해 뛰어난 사거리와 정확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 >유럽과 미국에 있는 육군의 기술자들은 이 신형 전차가 킹타이거에 대항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투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1945년 4월까지 베를린 서쪽에 있던 전선의 독일군의 전차는 연료가 바닥날 만큼 부족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기에 이 독일산 괴물 전차를 발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4월 21일 데사우에서, 10개월 연속 전투에 참가한 베테랑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조셉 조 마두리''' 육군 하사가 지휘하는 슈퍼 퍼싱 대원들이 괴물과 조우할 행운이 돌아갔다. > >당시 미 육군 제3기갑사단은 해당 도시인 데사우에 네 갈래로 나눠 공격을 시작하였는데, 강렬한 저항으로 방어되었다. 사단의 전차들은 콘크리트 전차 장애물이 파괴되고 나서야 고전 끝에 도심으로 서서히 진격하게 되었다. 제 3기갑사단이 흩어지며, 미 육군 제36보병연대 병력이 뒤를 따랐고, 이 슈퍼 퍼싱이 중심교차로에 다다르자 우측으로 차체를 돌리기 시작했다. 슈퍼 퍼싱의 전차승무원들은 몰랐겠지만, 이들이 들어선 교차로와 같은 방향에 약 두 블록, 혹은 600야드 정도 거리에 킹타이거가 매복 대기중임이 분명하였다. > >이 킹타이거는 자신의 능력선에서 정리될 것이라 파악하고 충분한 거리에서 슈퍼 퍼싱에게 포를 발사하였다. 하지만 전쟁 내내 미군의 많은 전차와 차량을 격파해온 그 악명높은 88mm의 고속 탄에도 불구하고, 슈퍼 퍼싱의 상부로 날아가 명중은 고사하고 근접한 방향으로 날아가지도 못하였다. 18살의 어린 나이였던 포수 '''존 “잭” 어윈''' 육군 상병은 거의 즉각적으로 킹타이거 차체 정면의 큼지막한 경사장갑에 포를 발사하여 대응을 하였다. 그러나 관통목적이 아니었던 '''고폭탄'''이었기에 효과는 전무하였다. 이 고폭탄은 장갑에서 도탄이 되었고, 킹타이거 상부로 날아가 아무런 피해 없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어윈 상병은 시가지에서 전차가 아닌 건물이나 적 보병, 그리고 경형 대전차포 등의 다른 표적을 상대하리라 예상하여, 슈퍼 퍼싱 주포에 위해 고폭탄을 장전된 상태였었다. '''“당장 철갑탄을 장전해!!“'''라며 어윈은 급박하게 소리쳤고, 전차장전수(탄약수)였던 “'''피트'''”가 '''철갑탄'''을 곧이어 장전하게 되었다. > >그때, 전차장 '''마두리 하사'''와 다른 승무원들은 포탑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굉음이 코앞의 킹타이거의 공격인지, 아니면 다른 대전차 무기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심각한 피해는 없었고, 비스듬하게 도탄 되었거나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곧바로, 어윈은 이 고성능의 괴물이 부서진 잔해 돌무더기를 밟고, 위를 바라보며 등판하기 시작하자, 준비된 두번째 포탄을 발사하였다. 90mm 철갑탄은 이 킹타이거의 정면 하단을 관통하였고, 탄약 적재공간에 명중하여 '''[[끔살|포탑이 유폭]]'''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거의 확실하게도, 킹타이거의 내부 승무원들은 전원 폭사하였다. > >하지만 슈퍼 퍼싱 승무원들은 그들이 잡은 사냥감을 확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슈퍼 퍼싱은 이미 처참하게 격파되어 불길이 오른 킹타이거를 지나 다음 거리를 따라 전투를 지속하였다. 독일군 대전차 보병화기인 판저파우스트와 기관총이 창문과 문틈에서 발사되며, 여전히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 >킹타이거와의 접전은 20초도 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평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격렬한 전차전은 아니었지만, 재빠르게 반응한 슈퍼 퍼싱과 승무원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데사우 전투는 이후 약 이틀이 지나서 종료되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5호 전차 판터|5호전차 판터]]로 추정되는 독일 중형전차를 단 2발로 사냥을 한 바가 있다. 초탄은 판터의 기동륜을 박살냈고, 차탄은 측면을 완전히 관통하였다. [[함께 폭사하자|판터 또한 적재된 탄약으로 인해, 내부 폭발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이후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을 이끄는 마두리와 승무원들이 독일 중형전차의 전차장에게 저항없이 무조건 항복하라고 강요하였다. 주포 탄약을 모두 소진하여 결국 항복한 독일군 전차 승무원들이 보고 기겁한 슈퍼 퍼싱이 탑재한 위협적인 외관의 90mm 장포신 주포는 이들의 그나마 남겨진 전투의지를 완전히 꺾었고, 아니면 아예 탈주하게 하였다. > >[[http://www.3ad.com/history/wwll/feature.pages/super.pershing.1.htm|원문]]출처.}}}}}}}}} || 하지만 프로토타입인 슈퍼 퍼싱과, 독일의 신형 전차여서 수량도 적던 티거 2가 만나는것은 극히 낮은 확률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임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슈퍼 퍼싱과 티거 2가 실제로 해당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첫 번째로, 당시 데사우 근처에는 티거 2를 보유하고 있었던 부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교전이 일어났던 45년 4월 21일 즈음에 티거 2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던 부대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 제501중전차대대 || 파더본 근처에서 이미 해산됨 || || 제502중전차대대 || 4월 19일 하르츠 산에서 이미 해산됨 || || 제503중전차대대 || 스트롱스트로프 근교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에서 전투 중 || || 제504중전차대대 || 이탈리아 페라라 근처에서 작전 중 || || 제505중전차대대 || [[오스트프로이센]] 주 에서 대대 자체가 해체됨. 보유중이었던 마지막 티거 2가 4월 15일에 격파되었음. || || 제506중전차대대 || 4월 14일에 아이서론 (루르 인근)에서 해산됨 || || 제507중전차대대 || 4월 11일에 오스터로데 (하르츠)에서 마지막 티거 운용이 있었음 || || 제508중전차대대 || 이탈리아에 있었고 기록상 티거 2는 보유하지 않았음.[* 이 대대는 최악의 졸전(...) 기록으로도 유명하다.] || || 제509중전차대대 || 남부 오스트리아 세인트 폴텐와 암스테텐 사이에서 작전중 || || 제510중전차대대 || 4월 18일 보드 계곡에서 해산됨 || || 무장친위대 소속 제501중전차대대 || 오스트리아 에슈체나우 에서 작전중 || || 무장친위대 소속 제502중전차대대 || 포르트슈텐발데 (베를린 남부) 근처에서 작전중 || || 무장친위대 소속 제503중전차대대 || 베를린에서 작전중 || 이 중, 교전이 발생되었다고 주장되는 데사우에서 가장 가까운 무장친위대 502[[중전차대대]] 조차 해당 지역에서부터 70마일, 약 100km정도 떨어진 위치에 존재하였다. 이중 티거2 딱 한대가 중대로부터 단독행동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에, 4월 21일에 티거2가 데사우에 존재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두 번째로, 해당 교전이 일어났음을 뒷받침하는 근거자체도 부족하다. 티거 2와 슈퍼 퍼싱의 교전이 일어났음을 주장하는 글들은 대부분 3AD.com 또는 존 어윈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으며, 3AD.com의 게시글 또한 어윈의 자서전을 출처로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티거 2와 슈퍼 퍼싱의 교전이 일어났음을 주장하는 자료는 어윈의 증언 하나뿐이다. 또한, 슈퍼 퍼싱을 현지에서 개조한 벨톤 Y. 쿠퍼(Belton Y. Cooper)는 슈퍼 퍼싱이 판터뿐 아니라 티거 2를 상대로도 충분히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슈퍼 퍼싱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으며, 3월 30일에 벌어졌던 셔먼 17대 및 잭슨 1대와 티거 10대간의 교전또한 상세히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죽음의 덫》(Death Traps)에서 해당 교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뿐더러, 교전사실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만일 슈퍼 퍼싱과 티거 2 간의 교전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가 자신의 자서전에 해당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당 전투 이후 미군이 데사우를 점령했는데, 만일 실제로 티거 2가 격파되었다면, 아군 전차가 적의 최신예 전차를 격파했음을 알려서 홍보 가능했을 것이고, 이것을 홍보하는데 사용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증거나 기념 형식의 사진자료는 남길 수도 있었을 테지만 사진자료 하나 남아있지 않다는것은 슈퍼 퍼싱과 티거 2 간의 교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세 번째로, 해당 교전이 일어났음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신뢰성에도 많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윗 문단에서 말했듯이, 티거 2와 슈퍼 퍼싱간의 교전을 주장하는 자료는 어윈의 증언 하나뿐이다. 어윈의 증언에서, 실제 교전한 전차는 판터 또는 4호 전차였음에도, 티거 2라고 착각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윈은 45년 1월경에야 자대에 배치되어 전선에 투입된 신병이었고, 당시 미군은 독일 전차를 보면 무턱대고 티거라고 지칭하였다는 점,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베테랑이었던 오토 카리우스조차도 소련의 IS-2와 티거 2를 착각하였다는 점 등은 어윈이 적 전차가 티거 2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어윈은 히스토리의 다큐멘터리에 출현해 티거 2라고 증언했으나 인터뷰 시점보다 훨씬 젊었을 때 작성되었으며, 3AD.com에서 인용했던 어윈의 자서전인《Another River, Another Town》(또 다른 강, 또 다른 읍내)에선 자신의 슈퍼 퍼싱이 상대한 전차를 티거 2라고 서술하지 않았고, 단지 티거라고만 서술하였다는것은 참전자의 증언에서, 적 전차의 종류에 대한 증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며, 오히려 나중에 더 이야깃거리가 되는 방향으로 살이 붙여져서 티거 2라고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네 번째로, 어윈의 전투 상황에 대한 증언 역시 적 전차가 티거 2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어윈은 자신의 자서전에, 적 전차에 고폭탄을 한 발 발사하고 후에 적의 차체 하단에 철갑탄을 꽂아 넣자 전차가 유폭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티거 2는 차체 측면과 포탑 후방 버슬에만 탄약을 적재하고 차체 하단 부분에는 탄약을 적재하지 않았으므로, 차체 하단에 맞은 철갑탄이 탄약을 유폭시켰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조종수 뒤편에 탄약을 적재하던 판터와 4호 전차, 포탑 바로 아래쪽에도 탄약을 적재하던 티거 1은 차체 하단을 관통한 철갑탄이 탄약을 유폭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추가적으로 판터나 티거는 4호 전차와는 달리 항상 포탑 아래쪽에 탄약을 적재하고 있던 것이 아니므로 만일 교전이 실제로 발생하였다면 적 전차는 4호 전차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를 종합해 보았을 때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과 독일 전차 사이에서 교전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허구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3기갑사단은, 데사우에서 전투에 참여한 티거 부대는 하나도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미군들이 독일 전차를 전반적으로 티거라고 불렀음을 감안하면 어윈이 자서전을 작성할 때 이전에 있었던 전투와 착각했거나, 아니면 아예 적 전차와의 전투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과 티거 2 사이에서 교전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데사우에서 전차 간 교전이 일어났다는 증언 자체가 허구거나, 데사우에서 슈퍼 퍼싱과 독일 전차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는 것까지는 사실이나 그 독일 전차는 티거 2가 아닌 티거와 비슷하게 생긴 4호 전차 H형이나 티거 2와 비슷하게 생긴 판터[* 실제로 많은 미군들이 판터를 티거 2로 오해를 자주 했다고 한다. 만약 J. Erwin이 적 전차를 데사우에서 조우했고, 그것이 티거 2라고 식별했다는게 사실이라면 판터일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다.]였다고 보는 것이 정황 증거상 더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